2007년 3월 12일 월요일

분노 없는 희망의 끝에 대하여

한참동안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단순히 우울하다, 지쳤다 란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갑자기 목표도 사라지고 의욕도 나지 않는, 그저 그런 하루 하루를 무심히 흘려 보내곤 했다.

참 우스운 일이다.
갑자기 내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
30여년 동안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단 한 순간에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어 버렸다. 끈질기게 나를 내면에서 채찍질 하던 경쟁심과 자존심 마저도 간 곳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부일 민족 반역자 말당이 말하기를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 이라고 했던가?
터놓고 말하자.
나를 지금까지 버텨 오게 한 것은 반은 내 알량한 자존심이고 나머지 반은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음 속에서 끌어낸 분노와 증오이다.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한 비겁한 자기 부정의 힘으로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와서 서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일런지 모른다.
관심받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자신을 멸시하는 증오와 자신에 대한 분노의 힘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억누르고 버텨 왔는데, 이젠 어느 정도 행복을, 주위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는 행복을 가지고 나니, 갑자기 더 이상 분노가 마음을 지배하지 않게 되고 이젠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소싯적에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이 "무엇을 하면 무엇을 해 주마" 란 말이었다.
댓가를 생각하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알수 없는 언짢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때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 결과가 주는 이익을 보고 행동하면 그것은 옳은 것이라 할 수 없다 란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암담할 따름이었다. 나는 언제나 옳은 일을 계속 해 나가지 못했다. 귀찮고 힘든 것을 참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내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했을때 나는 스스로를 저주하고 분노했다. 내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증오하고 스스로의 천박함에 눈앞이 깜깜해 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점점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하고 처절하기 짓밟은 후에야 스스로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황에서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고통으로 마음은 지쳐 있어서 귀찮고 힘듬에 대한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존재를 언제나 인식하고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언제나 모든 것을 버리고 깨끗하게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실상 그것은 내가 쓰고 있는 연극을 계속 슬픈 일로만 전개해 나가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기나긴 비극적 상황이 마침내 희망의 끝에 다다라 불행도 행복도 아닌 곳에 이르러 1막이 끝나고 암전이 찾아오자, 나는 2막이 두려워 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불은 켜지고, 서곡이 끝날 무렵이 되어 관객들은 의아해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비극만 공연할 수 있는 이 불쌍한 배우는 자꾸 뒷걸음 치며 비극으로 대본을 수정하려 하는 것이다.

2005.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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